『우리 가족의 역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역사의 가치를 높여 나가고 있다는게 즐거울 뿐입니다』
「비룡이네」로 알려진 월간 가정뉴스를 만들어 오고 있는 비룡이네 가족의 감회는 요즘들어 남다르다. 5월로 드디어 100호 발행이라는 감격을 맛보게 된 때문이다.
비룡이네 가족의 장남 방비룡(아우구스티노 대원외고)군이 초등학교 1학년이던 지난 90년 1월20일 창간호를 낸 이래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지금까지 8년5개월이라는 적잖은 시간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 왔기에 비룡이네 뿐 아니라 이들을 지켜봐온 이웃들의 느낌 또한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방비룡군이 숙제로 가지고 온「우리가족의 자랑거리」를 찾다 시작하게 됐다는 소식지 「비룡이네」는 이제 이들 가족만의 것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삶의 부분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이 나올 때 쯤이면 친구들이 먼저 갖다달라고 졸라대고 난리예요』
비룡이네의 막내 방시레(로사 세화여중 2년)양의 말이다. 유치원 때부터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 새학기 때마다 새로 오신 선생님께 자신의 글이 실린「비룡이네」를 갖다 드리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는 시레양의 얼굴은 자부심으로 가득 찬 듯했다.
발행 첫해 어머니 이근자(카타리나 잠원동본당)씨가 일일이 손으로 써서 4면으로 내던좥비룡이네좦는 이제 컴퓨터 편집을 거친 16면짜리 신문으로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70부로 시작했던 것이 250부로 늘어나기까지 주위의 관심도 이들 가족에겐 적잖은 도움이 됐다.
한국순교복자회 강석진 수사를 비롯한 추원호씨 등 적잖은 사람들이 고정 외부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비룡이네」는 그야말로「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얘기」를 담은 소식지가 된 셈이다.
초기 어린이들의 읽을 거리인 나폴레옹 전기, 헬렌 켈러 등을 비롯해 어른을 위한 임꺽정, 하얀전쟁 등을 가족회의에서 결정하고 함께 읽은 애기를 담던「비룡이네」는 참여하는 이웃들이 늘어나면서 칼럼, 낱말 맞추기, 영어 강좌 등 다양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비룡이네의 삶이 알음알음 알려져선지 오랫동안 「비룡이네」를 인쇄해오던 인쇄소 주인마저 인쇄비를 올려 주겠다는 비룡이네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나설 정도다.
매달 25일 비룡이네 네 식구는 머리를 맞댄다. 「비룡이네」의 원고 마감날이기 때문이다.
이때 만큼은 가족들 사이에서도 긴장감이 감돈다. 폅집국장(?)을 맡고 있는 어머니 이근자씨의 질책이 쏟아질 때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경력 8년 이상의 베테랑(?)들이라 채근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편집회의에서 자신이 맡은 고정란을 어떤 내용으로 꾸밀 것인지 얘기를 나누고 한달 동안 준비를 해오기 때문에 저마다의 생각 담아내기는 이제 웬만큼 익숙해져 있다.
『신문을 만들면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저희 가족 사이엔 비밀이 없어요』『젊은 세대들의 변화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어 가정의 화목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비룡이네 막내와 어머니가 전하는 말은 초등학생의 숙제를 뛰어넘어 어른들이 함께 풀어가는「가족」이란 숙제를 통해 함께 하는 삶의 모습을 들려 주고 있다.
[가정의 달 초대석] 가족신문 만드는 비룡이네
“「가족 역사」 살아 있다는 사실은 큰 기쁨”
8년 5개월 휴간없이 100호 발행 감회 새로워
수작업 4면에서 컴퓨터 편집으로 16면 발행
발행일1998-05-03 [제2100호,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