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구중서(베네딕토·73) 수원대 명예교수가 가톨릭출판사가 간행하는 잡지 「창조」의 편집주간을 맡던 1971년 겨울. 그는 잡지의 발행인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성탄 카드를 받았다. 그 카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저를 도와주시고…. 늘 선생님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이 큽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십시오.”
김 추기경은 당시 30대 청년 구중서에게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이는 두고두고 그에게 큰 울림으로 남았다. 훗날 구 교수는 “마치 퇴계 이황 선생과 남명 조식 선생이 사람에 대한 ‘공경’을 존중했던 것을 연상시킨다”며 “추기경은 행여 누구에게 소홀할까, 겸허를 다해 사람을 대했다”고 술회했다.
김 추기경과 구 교수의 인연은 그로부터 40여년이나 이어졌다. 구 교수 표현에 따르자면 ‘김수환 추기경님의 그늘’에 들어서 보낸 세월들이다.
큰 나무를 하늘로 먼저 보내드린 지 보름 남짓, 구 교수가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를 한 권의 책에 담은 평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책만드는집/208쪽/1만2000원)를 냈다. 책 제목은 알려진 바와 같이 김 추기경의 마지막 유언이다.
김 추기경이 직접 구술한 회고록이나 수상록이 아닌 삼자에 의한 추기경 평전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 교수는 김 추기경의 인터뷰 기사만을 모아 1981년에도 「대화집 - 김수환 추기경」을 펴낸 바 있다.
“작년 10월 김 추기경이 한때 위중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간 수집했던 자료를 모아 평전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39년 동안 지척에서 지켜본 제가 김 추기경의 삶과 철학, 신앙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에 책을 쓰게 됐습니다.”
평전은 김수환 신부가 1951년 대구 계산동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안동본당(현 안동교구 목성동주교좌성당) 주임신부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시작된다. 이후 독일 뮌스터대학 유학과 주간 가톨릭시보(현 가톨릭신문) 사장을 거쳐 66년 주교 서품과 69년 최연소 추기경 서임, 그리고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투신한 70~80년대와 90년대 이후부터 선종 직전까지를 서술한다.
구 교수는 특히 김 추기경의 현실 참여적 태도의 배경을 분석하고, 그 동안 일부 언론들이 곡해해 온 추기경에 관한 오해들을 해명한다.
“김 추기경께서는 늘 진리와 인간을 우선으로 꼽으셨습니다. 암울했던 시기 그분의 사회 참여는 ‘교회는 세상에 속하지는 않지만 세상을 위해 있는 것이지 세상이 교회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른 것입니다.”
구 교수는 “김 추기경이 보여준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실례를 들어 객관적인 입장에서 밝히고자 노력했다”며 “앞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더욱 충실한 평전으로 완성시켜나가겠다”고 밝혔다.
“돌아가신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책을 내게 돼 고인께 송구스럽습니다. 책이 출간 이틀 만에 2쇄에 들어갔습니다. 그만큼 민심이 우리시대의 큰 어른을 그리워한다는 뜻이겠죠. 내주 쯤 용인 성직자묘지의 추기경님 묘소를 찾아갈 계획입니다. 나의 스승 추기경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문의 02-3142-1585 책만드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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